커피 머신 이야기

소품집

18세기 문화인들은 커피를 '지식인의 음료'라고 부르며 사랑했다.
생활에 활력소는 물론, 카페인의 각성 효과 때문에 병원의 의사들도 치료 목적으로 많이 찾게된다.
심지어 이탈리아 밀라노 병원 협회에서는 내과 의사들이 커피를 만병 통치라고 부를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
커피를 마시는 방법은 꾸준히 연구되었으며 그것은 또한 상업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안젤로 모리온도(1851년 6월 5일~1914년 5월 31일 )

최초의 에스프레소 머신이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1884년 이탈리아 토리노에 살던 안젤로 모리온도의 장치였다. 
안젤로는 그해 열린 토리노 박람회에서 분쇄된 커피 가루에 증기압을 이용해 에스프레소 원액을 추출하는 원리를 이용한 최초의 기계를 선보인다.
이것은 이탈리아 커피 바에서 커피를 제조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현재 에스프레소 머신의 범주와는 다소간 차이가 있는데, 실제로 주문과 동시에 신속히 추출되어 제공할 수는 없었기에 대용량 커피양조기계로 봐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90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루이지 베제라(Luigi Bezzera)가 ‘증기 가압식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특허를 취득하면서 본격적으로 에스프레소 머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사실 이 시기에도 커피를 추출하는데는 꽤나 긴 시간이 걸렸고 직원들의 유휴시간 역시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베제라가 직원들의 유휴시간을 단축케 하려 고안했던 이 머신은 주문과 동시에 음료를 한 잔씩 바로 만들 수 있으며 추출시간을 수분에서 20~30초까지 줄였고 결과적으로 카페에서 운영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베제라가 생각한 에스프레소머신의 핵심은 ‘대기압보다 높은 압력’에 있었다.
기계 안에 있는 보일러의 물이 끓여질때 만들어지는 증기압이 뜨거운 물을 밀어내도록 했고, 1.2∼1.5bar 정도의 압력이 만들어졌다. 베제라 이전에도 증기압을 이용한 시도는 있었지만, 대량 제조만 가능한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시장성이 없었다.
하지만 베제라는 주문과 동시에 음료를 한 잔씩 바로 만드는 게 가능하도록 하였다.
당시로선 획기적이었지만, 너무 높은 추출수의 온도로 인해 커피에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탄맛과 쓴맛이 남게됐다.

파보니의 에소프레소 머신


게다가 머신에 대한 호평에도 불구하도 더 큰 회사로 발전하기에는 베제라의 경영적 측면은 상당히 열악했다. 
불운하게도 재정적 위기상태에 직면한 베제라는 1905년 데지데리오 파보니에게 헐값에 자신의 에스프레소 머신 제조에 관한 특허권을 양도하게 된다. 
이어 꽤 오랫동안 파보니는 에스프레소 머신 시장과 이탈리아의 커피바 문화를 주도하게 된다.

그러나 베제라와 파보니 모두 직면한 문제가 있었다.

증기압을 만들기 위해서는 끓는 물이 필요했지만 끓는 물은 커피 성분을 과도하게 끌어내었고, 결국 쓴맛이 커피 맛을 지배하는 결과를 낳았다.
머신 제조업자들은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가찌아가 개발한 피스톤 레버 방식의 에스프레소 머신

그러던중 1946년 가찌아가 피스톤 레버 방식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선보임으로서 에스프레소 문화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레버 머신은 추출과정에서 훨씬 더 높은 압력을 가할 수가 있었고, 피스톤과 용수철의 장력,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무려 10bar나 되는 압력을 만들었다.
높은 압력으로 추출과 동시에 뜨거운 물이 커피를 적시고 필터를 빠르게 통과해, 커피 속 오일 성분과 가용성 성분들이 보다 원활히 추출될 수 있도록 도왔다. 
15초 만에 추출이 완료가 되는데 이는 오늘날 대부분의 에스프레소 머신과 비슷한 속도다.
현재까지도 추출 압력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9기압의 압력의 기준점을 마련해준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에스프레소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은, 에스프레소 표면에 ‘크레마’라는 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0bar라는 고압이 가해지면서 커피의 지방 성분과 이산화탄소, 휘발성 향기 성분이 결합되어 있는 크레마가 만들어졌고, 기존 커피에서 맛볼 수 없었던 맛과 향, 질감을 소비자에게 제공하여 바리스타와 대중 모두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가찌아는 이 피스톤 원리를 미국 군용차량의 유압 시스템에서 착안했다고 한다다. 
그는 크레마가 살아 있는 에스프레소를 ‘coffee Cream from natural coffee’라고 불렀다.

재미나게도 이 머신을 운용하는 바리스타들에겐 스프링 장력을 이겨내고 레버를 당기기 위한 강한 팔힘이 요구되기도 했다. 
우스개 소리로 레버 손잡이를 놓치게 되어 손잡이에 앞니가 깨진 바리스타들도 많았다고 한다. 

증기압의 장벽을 넘은 뒤 많은 엔지니어들은 기계 부피를 최소화하고 물의 온도와 압력을 보다 안정시킬 수 있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디자인이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하며, 새로운 기술들이 끊임없이 적용되기도 했다. 
그 가운데 1960년대 페마에서는 획기적인 에스프레소 머신의 형태를 선보이게 되는데, 기존의 수동형의 메뉴얼 레버를 버리고 향상된 전기적인 기술을 도입하고 모터 펌프를 통해 추출 압력을 만드는 새로운 기술을 시장에 공개했다. 
보일러도 ‘열교환 Heat Exchange’ 방식을 도입하여 정교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물 온도의 편차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시각에서도 레트로 디자인을 갖춘 매력적인 자동차를 연상시킬 정도이니 그 자체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개기일식이 있던 1961년을 기념해 이름 붙여진 페마의 "e-61" 모델은 에스프레소 추출에 대한 획기적 기능과 디자인으로 지금도 복각된 버전이 활발히 판매가 되고 있을 정도로 사랑받는 훌륭한 모델이기도 하다.

페마 'e-61'

1970년대 들어 라마르조꼬에서는 기존의 보일러 방식과 다른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다.
GS 시리즈라 불리는 라마르조꼬의 모델들은 별개의 두개의 보일러를 통해 각각 커피 추출과 밀크 스티밍을 담당하게 했고, 이러한 독자적 시스템은 추출 온도의 안정성을 높이는데 많은 이점이 있었다.

'물 온도'를 위해 수십 년의 노력 끝에 2000년대에 들어서 물 온도는 물론 추출 압력까지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하이엔드 기기들이 탄생하였다. 
테라로사의 사용하고 있는 '시네소'는 각 추출구마다 개별 보일러를 갖고 있어 커피 추출에 쓰이는 물 온도를 독립적으로 관리해주며 물 온도를 0.1℃ 단위로 조정이 가능하다.

그리고 지금도 에스프레소 머신 제조사들은 각각의 정체성을 기기에 불어넣기 위해 연구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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