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차(茶 Tea) 이야기

소품집

차는 중국에서 비롯되었지만 세계인의 기호음료로 확산시킨 나라는 영국이다. 

17세기에 이르러 티로드(tea road)를 타고 포르투갈·네덜란드·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늦은 시기인 1630년대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차를 접했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보다 뒤늦게 차를 접하게 된 영국에서는 차가 단순한 기호음료나 사치품에 머물지 않고 영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산업혁명과 제국주의라는 사회적 요인으로 보고 있다.
또한 영국은 산업혁명 이전부터 음주가 일상화되어 있었는데, 술은 열량을 낼 수 있고, 안전하게 보관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게 되고 금주운동이 시작되면서 술 대신 차를 마시게 되었다.
차는 음습하고 안개가 자주 끼는 영국의 날씨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따뜻하고 든든하게 배를 채워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그렇기에 19세기 초에는 사치품이 아닌 일상품으로 실생활에 스며들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18세기 중반에 이르자 차는 중산층의 문화 속에 접목되며 영국내 차의 소비는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특히 전 국민의 음료가 된 19세기에 이르자 영국식 차문화가 속속히 탄생되며 국민음료로 거듭났다. 
식사는 물론이고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티 브레이크(tea break) 등 여가시간에도 차를 마시는 습관이 정착되어갔다. 
또한 얼리모닝 티(early morning tea)부터 나이트 티(night tea)까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즐기는 티타임은 19세기 영국인의 대중문화 중심이었다. 
이와 함께 인도·스리랑카 등에 다원을 개척하며 차가 세계인들이 즐기는 기호음료로 점차 자리하였다.

영국에서의 티타임은 사적인 공간인 가정에서는 물론이고, 직장 등 공적인 공간에서 차는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 시기 여성의 지위에 대한 자각현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애프터눈 티타임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다복의 출현과 더불어 여성의 출입이 가능한 새로운 찻자리 공간인 티룸(tea room)의 탄생되며 여성들의 활동반경이 넓어졌다. 
여성들의 진보운동의 상징이었던 차는 왕실과 상류층뿐만 아니라 노동자계층들에게도 긴요한 음료였다. 

차의 공급은 영국 소비자들의 욕구에 부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러자 영국은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하였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인도와 실론에서 다원이 개척되며 영국 홍차(The Empire Tea)를 생산하게 된다. 

인도 아쌈 지방에서 새로운 차나무를 발견하여 조사 및 연구를 시작한 ‘찰스 부르스’에 의해 아쌈 지방에서 차 재배가 가능해졌다.
아쌈의 신품종은 찻잎의 크기가 컸으며, 열대기후에 잘 견딜 뿐만 아니라, 뛰어난 맛을 냈다.


아쌈의 차가 성공한 이 후에도 중국종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영국은 계속해서 중국종을 들여와 심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그러던중 1841년 켐벨박사가 꾸마온의 중국종 차나무의 종자를 얻어 히말라야 구릉지대에 차 나무를 심었는데, 다즐링은 내한성 및 추운 날씨에 잘 견디어 부드럽고 섬세한 싹을 잘 생산해냈다.
켐벨박사의 후원아래 1856년 ‘쿠셩 앤 다르즐링 티 컴퍼니’가 설립되고 다즐링이 발전하게 되었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실론섬의 식민지를 차지하였고, 19세기 중반까지 커피 재배지로 성장하였으나 1870년대 말, 커피나무에 전염병이 발생하여 대체작물로 차를 재배하기 시작하였는데, 최초의 차농장은 캔디 동남부 ‘루레콘데라-이스테이트'로 1867년 영국인 제임스 테일러에 의해 첫 재배가 시작되었다.
제임스 테일러는 산악지대를 다원으로 개간하였고, 제다법과 홍차의 등급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또한 유념기를 개발하였는데, 그로 인해 실론의 홍차가 단기간에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실론의 차 산업은 차 재배에 적합한 지형과 기후, 인도 차 산업을 모델로 삼은 조직적이고 효율적인 경영과 재배, 가공 기술을 바탕으로 견실하게 성장했다. 

섬세하고 높은 고도에서 재배되는 실론차는 스트레이트 티로 판매가 되면서 맛과 질이 훌륭하다는 평판을 받게 되면서 빠른 성장을 이루었다.
이 후, 홍차하면 많은 이들이 부드러운 황금 빛깔의 실론티를 연상할 정도로 실론은 전 세계 홍차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차 수출국이 되었다.

인도에 이어 실론에도 다원이 개발되고 새로운 차 회사들이 세워지면서 차에 대한 붐을 일으켰다. 
국민음료인 차를 다른 나라의 생산에 의존하지 않게 되어 비로소 영국차의 정체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는 중국 차 산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중국 홍차보다도 좋은 홍차를 더 싼 값으로 공급할 수가 있었다.

영국의 홍차산업은 세계 차 시장을 주도적으로 이끌게 되는데 이 배경은 차의 산업혁명이라 일컬을 수 있는 기계화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는 점 외에도 상업학에 능통한 정부의 차 시장에서의 주도적 역할도 크게 작용하였다.

영국은 그들의 생활 사이클에 맞춘 차생활을 향유한 모습에서 중국을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인 그들의 문화로 재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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